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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종류의 부모 덧글 0 | 조회 1,148 | 2015-03-09 12:29:10
조영미  

우리 마음속 세 종류의 부모, 그리고 철든 부모되기

세 종류의 부모

 

‘도대체, 언제 철들래’, ‘철들어 기특하구나’...
철들다: [동사] 사리를 분별하여 판단하는 힘이 생기다.

농경민족에게 ‘철’은 제 계절을 지칭하는 것이고 철드는 행동은 제철에 맞는 일을 하는 것이다. 봄에는 꽃 피는 것이, 여름에는 무럭무럭 자라는 것이, 가을에는 추수하는 것이, 겨울에는 다음 해 봄을 준비하는 것이 철드는 행동이다. 여름에 추수하는 것은 조숙한 것이고, 가을에 봄 꽃이 피는 것은 미숙한 것이다. 조숙하거나 미숙하게 되면 최고의 소출을 보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마음속에 세 종류의 엄마, 아빠를 지니고 살아간다.

첫 번째 부모는 ‘좋아하는 부모’이다. 어린 시절에는 좋아하는 엄마, 아빠밖에 없다. 그래서 아이들에게는 이 세상에서 우리 엄마가 제일 예쁘고 우리 아빠가 가장 힘이 세다. 긍정적 부모가 마음속에 있는 아이들은 엄마와 결혼할거고 아빠와 영원히 함께 살 거라는 말로 부모를 기쁘게 하곤 한다. 아이들이 부모를 사랑하는 시기이다.

사랑하는 시기! 사랑의 가장 큰 특징 중의 하나는 사랑하는 대상의 마음에 들려고 최대한 노력한다는 점이다. 나 자체의 실존적 개별성은 크게 괘념하지 않는다. 나는 사과를 좋아했지만 연인이 배를 좋아하면 과감하게 사과를 버리고 배를 좋아하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고 실제 배를 좋아하는 사람으로 재탄생하게 된다. 사랑하는 사람의 칭찬 한 마디에 세상이 찬란해지고 비난 한 마디에 절망에 빠진다.

아이들은 사랑의 대상인 엄마, 아빠를 닮아간다.
<출처: gettyimages>

아이들은 사랑의 대상인 엄마 아빠를 닮아간다. 바로 동일시 과정이다. 엄마의 손동작, 아빠의 발걸음을 닮아가던 아이는 어느새 엄마, 아빠를 빼 닮은 작은 엄마, 아빠가 되어간다.

어린이들은 성장 발달해 감에 따라, 자기 부모와 비슷한 많은 태도와 행동패턴을 습득한다. 걸음걸이, 말투, 표정 등의 외적인 특징에서 시작하여 부모의 가치관, 도덕관, 세계관, 인간관 등까지 닮게 된다.

우리 엄마가 제일 예쁜 줄 알았는데…

아이들이 자란다. 우리 엄마가 제일 예쁜 줄 알았는데, 우리 아빠가 제일 힘 센 줄 알았는데, 집밖을 나가보니 더 예쁜 엄마도 많고 더 힘 센 아빠들도 많다는 걸 알게 된다. 나가보니, 즉 사회화가 진행되면서 아이들의 마음속에는 이제껏 사랑해왔던 부모와는 다른 부모가 생기기 시작한다. 두 번째 부모인 ‘싫어하는 부모’가 등장한다. 그렇게 예쁘던 아이가 말을 듣지 않기 시작한다. 미운 일곱 살이 된 것이다. 미운 일곱 살은 곧 청소년기로 이어진다. 이제는 말을 듣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반항을 하고 고집을 핀다. 싫어하는 부모와 함께 살면서 아이들은 생각한다. ‘우리 엄마는 계모가 분명해, 우리 아빠는 친아빠가 아닌 것 같아’. 조금 더 지나면 ‘아! 차라리 내가 고아였더라면....’ 신데렐라, 백설공주, 콩쥐, 피터 팬, 해리포터...

그렇게 예쁘던 아이가 말을 듣지 않기 시작하고 ‘싫어하는 부모’가 등장한다.
<출처: gettyimages>

청소년기였을 때의 나 그리고 사회화 과정 중의 내 아이를 포함하여 사람들은 모두 한번쯤은 고아환상을 경험한다. 나쁜 부모와 핍박 받는 고아로 나타나는 부모-자식간 갈등상황은 지극히 자연스런 발달과정이다. 아이들이 부모의 좋은 점만 볼 수 있다면 부모에게서 독립할 필요도 느끼지 못할뿐더러 독립도 하지 못한다. 좋은 부모에게서 왜 떠나려 하겠는가? 떠나지 못하는 아이들은 흔히 말하는 마마보이, 마마걸이 되고 만다. 펜실베니아 주립대학교의 심리학자 N. Darling 박사는 10대에 부모와의 논쟁이 보편적임을, 논쟁을 통해 부모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고, 부모-자녀 관계가 공고해짐을 보고했다. 부모의 바람직하지 못한 면을 볼 수 있는 아이는, 못마땅함을 극복하면서 부모를 넘어선, 부모를 능가하는 성인으로 성숙 발달한다. 모든 부모의 소망인 나보다 괜찮은 자식이 탄생하게 되는 것이다.

이 세상의 모든 자식들에게는 좋아하는 부모, 싫어하는 부모와 더불어 세 번째 부모인 ‘생물학적 부모’가 있다. 욕하면 안 되고, 굶겨서도 안 되고, 고려장을 해서도 안 되는 부양의 의무가 있는 부모이다.

우리는 모두 철들고 싶다

세 종류의 부모와 함께 살다가 홀연히 세 부모가 모두 마음속에서 사라지는 것처럼 보이는 시기가 온다. 부모에 대한 절절한 사랑도, 사무치는 미움도, 사회적 의무도 그저 그렇게 다가오는 시기로 일반적으로 자식이 성장하여 새로운 가정을 이루는 때이다. 이 때 자식들은 부모가 그냥 부모의 자리에서 신경 쓰이지 않게 잘 있기를 바란다. 그러다가 자식의 자식 마음속에 싫어하는 부모가 생기기 시작하는 시기가 되면 부모의 부모가 재등장한다. ‘우리 엄마도 이런 마음이었겠구나! 우리 아빠도 이렇게 아팠겠구나! 엄마, 아빠, 고맙고 미안해요!!!’

재등장하는 부모의 부모는 긍정적 특성을 띠지만 어린 시절처럼 무조건 좋은 엄마, 아빠는 아니다. 단점이 있지만 그 단점이 이해가 되는, 그래서 인간 대 인간으로 받아들여지는 친구 같은 부모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사람들은 슬기롭게 세 종류의 부모와 함께 살아가는 건강한 심리발달을 경험하는 것이다.

아이들은 부모를 좋아하면서, 부모와 갈등하면서 적절하게 성장한다.

템플대학의 스타인버그(L. Steinberg) 박사는 수십 년간의 발달단계와 발달과업에 관한 심리학 연구를 메타분석한 후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했다. 아이들은 부모를 좋아하면서, 부모와 갈등하면서 적절하게 성장한다. 반면에 부모들은 아이들과 사이가 좋았던 초기 발달단계에 머무르려 하며, 갈등을 아이들보다 더 못 견뎌 하는 경향을 보였다. 사랑스런 유아기와 심술궂은 반항기라는 고정관념을 유지하며 부모로서의 지위를 권위적으로 유지하려 한다.

철들기는 쉽지 않다. 부모로서 철들기는 더욱 쉽지 않다. 그러나 우리는 모두 철들고 싶다. 특히 부모로서는.

김미라
서강대학교 평생교육원 심리학과 주임교수
고려대학교 심리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기억 및 학습법, 공부법 등에 관해 연구하고 있으며 교육방송(EBS) ‘60분 부모’에 출연하여 효과적인 공부법에 대해 소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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