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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를 내려놓자 덧글 0 | 조회 554 | 2017-03-09 12:19:02
지피지기  

화를 내려놓자

 

[강북삼성병원] '앵그리버드'라는 게임이 인기를 끌고, 얼마 전까지만 해도 TV프로그램에는 한창 그 '앵그리버드' 분장을 한 캐릭터가 TV에 나와 '화가 난다~'를 외치며 웃음을 자아냈던 걸 기억하시는지요? 이렇게 웃음을 위한 소재나 즐길 거리로만 '앵그리'가 존재하면 다행이지만, 안타깝게도 '홧김'에 저지른 범죄가 막장드라마의 소재처럼 생소하지 않게 뉴스에 왕왕 보도되는 걸 우리는 쉽게 볼 수 있습니다.

화는 사실 소수의 사람만이 아니라 평소 우리가 자주 느끼는 감정입니다. 성인군자가 아닌 이상 화 때문에 안색이 굳고 가슴이 답답해 본 경험을 누구나 겪어 봤을 것입니다. 어떤 연구에 따르면, 우리나라 사람들 중 주 1회 이상 화를 느끼는 사람은 91.8%나 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중 절반은 주 3~5회 정도의 화, 즉 분노를 경험한다고 합니다. 정말 '앵그리 코리아'라는 말이 나올 법도 합니다.

사실 모든 화가 몸과 마음에 해롭고 나쁜 것은 아닙니다. 전철 안에서 어떤 낯선 사람이 가만히 앉아 있는 내 아이의 볼을 세게 잡아 당겼다고 상상해 볼까요. 일반적인 부모라면 그 상황을 목격한 순간 화가 나서 그 사람에게 화를 내고, 더는 아이를 해코지하지 못하도록 아이를 보호하는 게 당연한 수순입니다. 이럴 때의 화는 위협적인 상황에서 어떤 행동을 취하게 해주고, 적극적이고 단호한 문제 해결행동을 하도록 격려하는 건강한 역할을 해 줍니다. 즉,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화가 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적대감으로 물든 분노, 냉소로 가득 찬 화를 가슴 속에 무겁게 품고 지낼 때입니다. 또, 감정에 휘둘려 충동적으로 화를 표출하는 것도 문제가 됩니다. 이런 분노의 감정과 행동들은 분명 대가를 치르게 되는데요, 예를 들면, 화를 곱씹다가 정작 중요한 다른 일에 전혀 집중을 못한다거나, 가슴 속에 불덩이가 앉아 있는 느낌이 들어 소화가 안 되고 머리가 아플 수도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욱하는 마음에 버럭 화를 내어 남에게 상처 주는 말을 쏟아 낸다면,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가 나빠지는 건 불 보듯 뻔한 일입니다. 다소 극단적이라고 생각하실 지도 모르지만, 화를 다스리지 못해 결혼생활이 엉망이 되거나, 욱하는 마음에 직장을 관두는 사람들을 우리는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습니다.

문제는 잠깐의 화로 일을 저질러 놓고, 뒤늦게 가슴 치며 후회해봤자 소용없다는 것 입니다. 그렇다면 몸과 마음에 해가 되는 적대적인 분노를 어떻게 다루어야 할까요?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입니다. 먼저 화 또는 분노가 생기는 과정을 이해하고 안 후, 화를 내려놓고 가벼워지기 위한 방법들을 살펴보는 게 중요합니다.

화 또는 분노는 보통 아래 다섯 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첫 째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화 또는 분노보다 먼저 올라오는 감정(pre-anger feelings)들이 있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감정들이 불편하기 때문에 그냥 회피해 버리고, 화로 포장해 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면 수치심이나 죄책감, 불안과 같은 감정들입니다.

두 번째는 촉발사고(trigger thought)입니다. 죄책감이나, 상처, 실패와 상실과 같은 경험을 좋은 의미로 받아들이면 문제되지 않겠지만, 그런 경험이 '나는 피해자', '나는 희생자'가 되었다는 생각으로 이어지거나, 'OO 때문에…' 라는 생각으로 원통해 할 수도 있습니다. 결국 이런 감정들은 화로 이어지기 쉽습니다.

세 번째는 화 자체로 인한 신체에 변화인데요, 가슴이 두근거리거나, 호흡이 빨라지고 얼굴이 달아오르는 등 자율신경계 반응들이 동반됩니다.

네 번째는 행동화하려는 충동입니다. 화가 증폭되면 강한 에너지 때문에 불쾌해지고 방출하고자 하는 자연스러운 욕구가 생깁니다. 당장 어떤 행동을 취하고 싶어지고, 짧은 순간이더라도 표현 가능한 반응들을 탐색하기 시작하게 됩니다.

마지막 과정은 바로 분노행동입니다. 분노행동이라고 하면 우리는 보통 고함치기, 자리 박차고 나가기, 주먹으로 물건치기 같은 극적인 행동을 떠올리지만, 사실 불쾌한 표정 짓기, 빈정거리기, 험담하기, 한숨 쉬기, 거리 두기와 같은 미묘한 행동도 분노행동에 해당됩니다. 즉, 화는 얼굴표정, 언어표현, 음색, 겉으로 드러난 행동 등 다양하게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럼 마음 속 앙금으로 남는 화를 어떻게 내려놓을 수 있을까요? 혹은 그동안 순간 욱해서 저질렀던 행동을 앞으로 어떻게 달래면 좋을까?

먼저 감정을 다룰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그 감정을 솔직하게 인정하는 것입니다. 인정하지 않으면 뭐 때문에 화가 치솟는지 알기 어렵습니다. "지금 난 화가 났어, 스스로 좀 돌보자"하고 인정하는 연습을 해 봐야 합니다.

두 번째는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마음속에서 "저건 옳지 않아" 혹은 "사람들이 날 무시 했어" 같은 생각을 놓지 못하고 계속 떠올린다면 화에서 벗어나기 어렵습니다. 나를 괴롭히는 화를 다스릴 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은 바꿀 수 없는 상황이나 타인을 바꾸는데 괜한 공을 들이는 것이 아니라, 가능한 범위 내에서 내 자신의 변화를 꾀하는 것 입니다.

세 번째는 앞에서 얘기했던 것처럼 분노 밑에 깔려있는 상처나 두려움이 무엇인지 탐색해 보는 것 입니다. 무엇 때문에 상처를 입었는지, 나는 무엇이 두려운지 알아차리는 게 중요합니다. 내가 두려운 것이 죄책감, 수치심, 상처, 두려움, 거절, 부적절감 같은 느낌일 수도 있고, 내 명성, 이미지, 남들의 인정, 과거의 실수, 놓쳐 버린 기회일 수도 있습니다. 또 어쩌면, 지위, 돈, 사람을 잃어버리는 것을 두려워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혹은 다른 사람에게 어떤 비난이나 평가의 말을 쏟아내고 있는지 알아차리는 것도 중요합니다. 혹시, "저 사람은 너무 신중하지 못 했어", "비열하고 치사해", "나라면 그렇지 않을 텐데" 같은 어떤 생각에 메어 화와 분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시죠.

네 번째는 스스로 토닥이고 위로하는 것입니다. 저는 어릴 적 심하게 열이 나고 아플 때, 아스피린 같은 약보다 엄마가 곁에 있어 줄 때 마음이 한결 편해졌던 경험이 있습니다. 펄펄 끓는 이마에 엄마가 손을 얹어 놓을 때의 느낌을 가만히 떠올려 보면서, 그런 비슷한 사랑과 연민을 나 자신에게 베풀어 보시죠. 분노 밑에 깔린 상처와 화로 힘든 자신을 따뜻하게 토닥이고 위로하면 의외로 큰 효과를 보게 됩니다.

이 외에도 상대방 입장이 되어보는 역지사지의 마음 가져보기, 스포츠나 취미활동, 미술활동과 같이 건설적인 통로로 감정을 해소하기, 순간의 화를 30초만 참아보기 등 다양한 대처전략들도 함께 사용해 보시지요. 어떤 방법들은 도움이 될 수도 있고, 어떤 방법들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화를 다스리려고 노력하는 것은 나를 사랑하는 길이고, 나를 행복하게 만들기 위한 일이라고 생각하신다면, 그 정도의 시도와 노력은 분명 가치 있는 일입니다.

칼럼니스트 : 이소연 임상심리전문가 (강북삼성병원 종합검진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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